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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ing Grace(놀라운 은총) / nana mouskouri(나나무스꾸리)

용흥 2015. 9. 3. 00:00

 

 

 

 인물소개:

 

그리스 아테네 출신인 나나 무수꾸리는 1959년 데뷔한 이래 감미로운 목소리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이지적인 분위기로 세대를 뛰어넘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로는 ‘사랑의 기쁨’, ‘Try to remember’, ‘Why worry’ 등이 있다. 그러나 팝 가수로만 나나 무수꾸리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건 나나 무수꾸리의 일부만 아는 알고 있는 셈. 클래식을 전공한 나나 무수꾸리는 그녀 특유의 소프라노 음색을 가스펠, 재즈, 클래식 등 모든 장르를 오고 가며 부드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히브리 노예의 합창’, ‘슈베르트의 보리수’, ‘비제의 카르멘 중 하바네라’ 등이 그 예이다.

그 동안 450여 장의 앨범을 발매하여 그 중, 350여 장을 골드앨범 또는 플래티넘 앨범에 등극시킨 나나 무수꾸리는 팝 역사상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가수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그녀의 음악은 영화, 드라마의 러브 테마곡으로 사용되어 국내에서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Nana Mouskouri - Amazing Grace 2011

 

 

Nnana Mouskouri - Amazing Grace

 

 

Amazing grace (놀라운 은총)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놀라운 은총, 나같은 비열한 자를 살린 그 소리가 얼마나 감미로운가.
나는 한때 방황했지만,
지금은 내 자신을 찾았다네.

한때 나는 눈이 멀었지만 지금은 보이네.

 

Those grace that taught my heart to fear,

And grace my fears relieved

How precious did that grace appear!

The hour I first believed.

내 마음에 무서움을 알게한건 은총이었고,

내 두려움을 덜어준 것도 은총이었다네,
그 은총이 내게 얼마나 귀중하게 나타났던가

내가 처음 믿기 시작한 그 시간이...
 

Through many dangers, toils and snares,

I have already come

These grace has brought me safely that far,

And grace will lead me home.

내가 이미 겪어온 많은 위험과,

고생과 유혹을 통해서 나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은총은 아직 까지는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나를 나의 안식처로 인도할 것입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놀라운 은총, 나같은 비열한 자를 살린 그 소리가 얼마나 감미로운가.
나는 한때 방황했지만,
지금은 내 자신을 찾았다네.

한때 나는 눈이 멀었지만 지금은 보이네.

 

 

Amazing Grace에 대한 이야기 :

 

세계적인 애창곡이 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태어난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싣고 미국으로 가는 노예선의 선장이며 노예 상인이던 영국인 존 뉴턴<John Newton>은 1748년 5월10일 항해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의 위험에 처하자 하나님께 매달리며 구원을 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뉴턴은 크리스찬으로 개종한다.

 

그 후 몇 년간 그는 노예 사업을 계속했으나 결국 노예 상인 생활을 청산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뉴턴은 그 후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예제도에 반대하게 된다. 나중에 목사가 된 그는 자신을 구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다. 방탕하고 부도덕한 노예 상인이었던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내용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울려 널리 애창되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가사에 지금의 곡이붙은 것은 1830년경의 일이라 한다.  

 

미국의 체로키 인디언 부족은 백인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동료를 제대로 장사 지낼 수 없을 때 이 노래로 장례를 대신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노래는 미국의 남북전쟁때 북군과 남군이 모두 '전쟁 찬송가Battle Hymn'으로 불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60여년 전인 1838~39년. 지금의 미국 동부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러배마 주 일대에 살고 있던 체로키 인디언이 백인 이주민 국가 '미합중국'의 강제 이주령에 의해 고향에서 5천리(2000km) 떨어진 머나먼 오클라호마 주 허허벌판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들이 미국 기병대에 쫓겨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연을 미국사에서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라고 하지요. 정확히 말하면 '눈물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화가 로버트 린드노(1871~1970)가 그린 '눈물의 길'(1942년 작)

 

이 그림을 보면 마치 이들이 따뜻한 담요와 말, 마차를 갖고 떠난 것 같지만 사실은 몸에 걸친 옷 정도밖에는 거의 갖고 갈 수 없었답니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쫓겨난 거지요.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추운 한겨울에도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체로키 인디언 강제이주로. 고향에서 5천리 너머 중부지방으로 쫓겨났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얼추 4,000명이 도중에 숨졌습니다. 이 피눈물과 죽음의 강제이주는 1839년 봄에 끝났습니다. 이때 이들이 부른 노래가 Amazing Grace였습니다. 죽은 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 노래의 영감을 빌려 그들의 명복을 빌었고 살아남은 이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체로키어로 번역해 이들에게 전해 준 인물은 이들과 함께 살면서 강제이주에 끝까지 반대해 법정투쟁까지 하며 이들을 도운 백인 선교사 새뮤얼 워시스터(1798~1859)였습니다. 오늘날 체로키 인디언들은 이 노래를 거의 애국가처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