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무악석(看無惡石)/수석자료와정보

천하명석 硏山石과 미불이 직접 그린 진품 硏山圖 감상

용흥 2015. 8. 27. 12:20

인터넷의 블로그나 카페에 수석용어를 정리하여 놓은 것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정확한 검토없이 다른 사람이 정리해 놓은 것을 단순히 퍼 나른 것이다.  문제는 그 속에 잘못된 내용이 있어도 고쳐지지 않고 잘못된 내용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있다. 그중 대표적인 용어로 '연산석'이 있다.

 

連山石: 미원장이 소장하던 괴석.  길이가 한 자 정도 짙부른색. 9() 8(). 산봉이 연이어 있는 수석.

 

산봉이 연이어 있는 수석은 연산석連山石이 맞지만, 미원장이 소장하던 괴석은 連山石이 아니라 硏山石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벼루처럼 이 돌에 먹을 갈아 썼다고 하여 갈 '연硏'자 硏山石, 또는 벼루 '연硯'자를 써서 硯山石이라고도 하였다. 연산석의 주인공 미불米芾(1051~1107)은 중국 북송 때의 서화가로 유명하지만, 우리 수석인에게는 돌에게 절을 하고 ‘돌어르신’이라 불렀다는 ‘拜石이야기’와 米元章의 상석법 4원칙(瘦秀)으더 잘 알려져 있다.

 

연산석은 중국 오대십국 남당南唐의 세번째 왕 이욱李煜이 가지고 있었지만, 재위 16년만인 975년에 宋나라를 세운 조광윤에게 항복을 하여 나라가 망하면서 흘러 나와, 미불이 소장하게 되었다. 미불이 한 때 관직을 사임하고 현재 강소성江蘇省에 속하는 단양丹陽에서 집터를 찾고 있을 때, 소중용蘇仲容이라는 사람이 감로사甘露寺 아래 쪽에 숲이 우거지고 푸른 강을 끼고 있는 좋은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미불은 이 수려한 땅을 얻으려고 욕심을 냈고, 소중용은 미불이 가지고 있는 연산석이 탐이 나서 이 땅과 맞바꾸었다. 연산석은 한 자 남짓한 크기로 서른여섯 개나 되는 봉우리가 있고 좌우가 불룩하며 중앙은 평평하여 벼루로도 사용하던 천하명석이었다.그후 미불은 연산석이 너무나 보고 싶어 소중용에게 한번만 구경시켜 달라고 졸라도 결코 보여주질 않았다미불은 탄식을 하면서 붓을 들어 그 돌의 그림을 그리고 시를 읊으며 마음을 위로했다고 한다. 이때 그린 그림이 보진재연산도寶晋齋硏山圖이며, 보진재는 미불이 세운 서재의 명칭이다. 이 연산석으로 소중용이 시를 지었고, 미불도 아래와 같은 시를 지었다.

 

硏山을 다시 볼 수 없으니 詩를 읊는 데에 헛된 탄식뿐이다.  오직 갖고 있는 ‘두꺼비돌’만이 나를 향하여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다.  이 돌이 그 사람에게 한번 들어간 후에는 내 손에서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구나.  항상 친구들과 함께 가서 그것을 보자고만 하여도 꺼내 보이지 않으니 蘇公은 정말 인색한 사람이다.  내가 지금 붓을 들어서 상상하며 그 돌 그림을 그리니, 그럴듯이 비슷한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난다.  이제부터는 마땅히 우리 집의 뛰어난 기운이 다시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1102년의 일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硏山石을 상상하며 硏山圖를 그렸는데, 본래의 모양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미불이 직접 그린 진품 寶晋齋硏山圖          인용: [자연미생활 71호 85년 1/2월호] 144~145쪽     출처: [中國의 庭]

 

그림의 왼쪽 글은 미불의 아들 미우인米友仁이  '오른쪽 硏山은 아버지 미불이 직접 그린 것이다'라고 확인하고 있고

 

그림의 제목 옆 글귀

 不假琢 渾然天成(불가조탁혼연천성)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않은, 천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림 가운데 글귀

 龍池遇 天欲雨 則津潤(용지우 천욕우 칙진윤)

 용의 못은 하늘이 비를 내리려고 하면 물기가 축축해진다.

 

그림 아래 오른쪽 글귀

 滴水小渴(적수소허재지 내경순부갈)

 물방울이 못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열흘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다.

 

그림 아래 왼쪽 글귀

 下洞三折通上洞 予嘗神遊於其間 

  (하동삼절통상동 여상신유어기간)

 하동은 세번 꺾여 굽이치며 상동으로 통한다.내가 일찍이 마음 속으로 그 사이에서 노닐었다.

 

 

또, 중국 명나라때 저작된 [米襄陽志林]에서도 보진재연산도를 소개하면서 각 봉우리와 처처를 감상하고 있다.

인용: 장준근의 [옛 선비들의 愛石風流] 201쪽     출처: [米襄陽志林]

 

 

<華蓋峯> 玉으로 만든 추를 寶蓋山에 달아놓으니 맑은 기운이 하늘 문을 열었다. 비와 이슬은 그 아래에 있으니 어찌 초목이 번성하는데 거리낌이 있겠는가?

 

<月岩> 미끈한 바위가 둥근 달빛을 가렸으니 萬古의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곧바로 단정히 바라보면 비로소 山河를 보는 기분이다.

 

<翠巒> 머리를 들어 우뚝이 솟은 것을 보자 하니 그 높이가 지극히 높고 가파르다. 푸르른 빛이 항상 사람을 비쳐주므로 반드시 그 밑바닥엔 신선한 물이 있음을 알겠다.

 

<方壇> 문득 방단에서 하늘 위의 세계를 바라보면 하늘로 오르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험하여 길이 없을까 의심을 품는다. 흰 鶴은 다시금 돌아오지 않고 하늘 높은 가을은 바람과 이슬을 위하여 활짝 열어 놓은듯하다.

 

<玉筍> 죽순처럼 솟은 봉우리는 깍은 玉과 같아서 가히 君子가 은거할 수풀 속이라 표할 수가 있다. 죽순 같은 봉우리에 아마도 해가 기울면 虛心한 자가 아니고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깊고 맑은 물이 하늘의 경치를 끌어 모아 물 위에 비치게끔 한다만약 볼만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이것을 보는 사람 스스로가 그 그윽하고 험준한 경치를 깨닫는데 있다.

 

<上洞> 구름과 비를 부르기도 하고 흩어 버리기도 하는데, 원숭이들은 붙들어 맨 줄을 끊으려 하므로 어찌 도망치는 형용을 가진 놈은 없겠는가?  이들은 조그마한 별천지를 오락가락한다.

 

<下洞> 입술이 처진듯한 모양은 木瓢라는 식물의 느슨한 잎사귀와 같고 또 오무려 있는 곳은 주둥이와 같다호랑이와 표범은 한곳에만 쳐박혀 있지 않고, 바람과 우뢰는 때때로 짐승의 울음처럼 꾸르렁거린다.

 

이렇듯 작은 돌에서 비와 이슬과 수풀과 山河와 짐승들의 울음소리까지 듣는 선인들의 수준 높은 감상법에 비추어, 오늘날의 수석인들은 적어도 連山石과 硏山石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다

[출처]  별무신통 블로그 / 별무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