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무악석(看無惡石)/수석자료와정보

수석은 언제부터 '壽石'이라고 하였을까?

용흥 2015. 8. 28. 14:12

지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인 수석을 언제부터 '壽石'이라고 하였을까?  수석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자연을 축소하여 정원을 꾸미는 '석가산石假山'과 '괴석怪石'을 만나게 되므로, 이 '괴석'이 현대적인 '수석'으로 바뀌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 수석을 '壽石'이라고 최초로 표기한 것은 1967년 11월 1일 ~6일 [石友會 菖蒲壽石展]에서이다.

(주1) 추가연구에 의하여 더 빨리 사용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수석을 壽石이라고 부른 그 이유에 대하여서는 [분재수석 35호, 1979년 1/2월호] 96쪽, 서울을 중심으로 70년 전후의 한국 애석의 발자취 '70年 前後의 愛石界 (二)'의 내용을 인용하여 살펴 본다.

 

 " 우리가 처음 '壽石'이란 용어를 쓰게된 것은 그 글자의 의미가 深長할 뿐만 아니라 옛부터 石壽萬年이란 글이 전해졌고 秋史의 글에 老苔壽石이란 말이 있는 등 예전 문헌상에 나타난 것을 인용한 것으로서 李海善씨의 주창으로 합의된 것이다. 水石은 山水景石의 약자이고 물에 돌이라는 뜻이고 또 漢韓사전이나, 우리말 사전을 찾아 보더라도 수석이란 물과 돌로 이루어진 경치, 곧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의 경치를 평하는데 쓰는 말이라고 해설한 것일뿐인데, 실제로 돌 좋아함은 怪石 物形庭園石 기타 여러가지 형태가 있으므로 이를 통틀어 '水石'이라 말함은 당치않으므로 '壽石'이란 용어를 대표적인 고유명사로 쓰자 했던 것이다."  -韓基澤 

 

1971년 발행된 장준근님의 저서 [돌의 멋]의 부제가 '壽石 趣味의 世界'였고, 이후 장준근님의 저서에서는 꾸준히 수석을 '壽石'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壽石'이라는 표기는 초기에 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수석의 태동기에 설립된 주요 수석회의 이름을 살펴 보면 수석 관련 일본잡지인 [樹石], [水石]의 영향으로 1966년 '樹石會', 1969년 '水石會' 등으로 시작되었다가, 1973년이 되어서야  '壽石會'라는 표기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그 이후에 주로 '壽石會'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3년 창간된 최초의 수석월간지 [盆栽壽石]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분재수석] 창간호 78쪽에서 발행인 張俊根님은 왜 壽石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략) 이러한 뜻에서 石壽萬年이란 옛 글귀가 있듯이 돌이 품은 근원적인 내용은 오래고 길게 흘러 왔다는 '壽', 그러한 '石'이다.  (중략)

 

돌이 품은 內容에 대한 느낌 즉 靜寂한 세월감, 이것은 동양적인 감각이다. (중략)

 

이것은 옛 글귀에 나오는 '老苔壽石'의 정숙한 경지인 것이다. (중략)

 

'水石'이라는 文字는 漢文古典의 어디에서나 얼마든지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 '水石'은 오늘날 우리들이 즐기고 있는 '돌'을 뜻하는 내용이란 분명히 한군데도 없다.  고전에 허다하게 나오는 '水石'의 뜻은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의 경치 즉 돌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가의 경치를 표현할뿐이다. (중략)

 

오직 山水景石의 약자로서 '水石'이라 부를때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중략)

 

'水石'이 山水景石의 略字일 때에, 그것은 '돌'의 形式面(外形)에 더 비중을 두고있다고 보면 '壽石'은 모든 '돌'의 內容面 (精神)의 근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壽石'은 1981년 '한국壽石會', 1985년 '대한민국壽石人총연합회' 등 전국적인 조직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며 수석을 '壽石'이라 부르는 흐름을 굳게 하게 된다.

 

반면 현대적인 수석을 '水石'이라고 표기한 것이 시기적으로 앞서고, 이런 흐름이 꽤나 오래 이어져 왔다. 다소의 이견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현대 수석 최초의 전시회로 공인받고 있는, 1967년 부산에서 열린 '大韓樹石會' 문용택님의 개인수석전시회의 표기는 '水石展'이었으며, 초기 영남지역 대부분의 수석 모임도 '水石會'였고, 1973년 발행한 박두진님의 수석시집 제목도 '水石列傳'이었고, 1977년 이면근님의 수석입문서의 제목도 '水石美의 탐구'였고, 세월이 한참 지난 1997년 김석님의 수석시집 제목도 '水石戀歌'였다.

  

[분재수석 56호, 1982년 7/8월호] 114쪽에 당시 경주수석회장 鄭二星님은 '水石'이라 써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전략) '水石'이 옳으니, '壽石'이 맞느니 해서 10여년 전에 한동안 논란이 있기는 했으나 '水石'이라 쓰든 '壽石'이라 부르든 당사자들이 좋아서 부르고 쓰는데,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요는 돌을 하는 마음가짐과 精神자세가 문제일 따름이라 믿어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이 문제가 재연되고 있다.  그 중에도 일부 몰지각한 분들은 '壽石'은 우리말이요, '水石'은 일본용어로 잘못 알고 '壽石'이라 부르는 사람은 愛國者요 '水石'이라 부르는 자는 마치 日本人의 추종자인 양 와전하여 創立 당시 'OO水石會'라고 지은 會名을 'OO壽石會'로 고치는 사례가 있다고 하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중략)

 

이 기회에 '水石'이라는 문구는 日本人의 專用語가 아니라 우리말이며 또 '壽石'보다 '水石'이라 쓰는 것이 옳다는 근거를 밝히고자 한다. (중략)

 

그러나 '壽'자는 단지 생명의 상징일 뿐 다른 뜻은 없으나 '水'자는 그 뜻이 깊고 무한하다.  그래서 '水石'으로 쓰는 것이 옳다고 여겨져 '水石'이라 쓰고 있는 것이다. (중략)

 

'水石'이란 산수경석의 준말이 아니라, 군자처럼 심성이 어진 사람이 즐겨누리는 돌, 다시 말하면 모든 계층의 사람이 다같이 즐기는 돌이란 뜻이다. 荀子君道篇에 보면 '水交'란 말이 있다.  水交란 君子들이 서로 교유한다는 말로서 '水'는 곧 君子란 뜻이므로 '水石'이란 君子가 누리는 돌이란 뜻이 된다. (중략)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水'字의 뜻은 君子도 되고 庶民도 되니 우리가 趣味로 즐겨 누릴 수 있는 돌은 '水石'이라 부르고 쓰는 것이 타당하므로 이를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필자는 두분의 주장이 모두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었다고 인정되지만, 수석을 '水石'이라고 표기한 것이 明治 10년(1877년)경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주2) 추가연구에 의하면 확실한 근거는 明治 39년(1906년)이다.   1965년 일본에서 발행되어 한국에까지 널리 소개된 村田圭司의 수석책 제목이 [水石]이었다는 점 등에서, 수석을 '水石'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본의 영향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水石'이란 표현이 좋은 뜻을 가졌다는 해석은 훌륭하였지만, 우리 고유의 것에 접목시키지 못하여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반면 '壽石'이란 표현은 1800년대초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우리 고유의 표현이라는 것 때문에,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석을 '壽石'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정착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壽石'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의 壽石老苔池館이며 이후 아래와 같이 근대의 괴석도 등에서 '壽石'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다가. 현대의 石友會 菖蒲壽石展으로 계승되어 왔음을 고증할 수 있다.

 

 최초(?)로 壽石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秋史 金正喜(1786~1856년)의 광거당 현판 '壽石老苔池館'

 

 

石壽萬年 표제의 夢人 丁學敎(1832~1914년)의 괴석도

 

 老苔壽石 표제의 夢人 丁學敎(1832~1914년)의 괴석도

 

 

 石壽萬年 표제의 小琳 (1853~1920년)의 기명도

 

此江 朴基正(1874~1949년)의 글씨 壽石之館

 

 

雨雨風風經萬年 水流萬轉是壽石 이란 글이 추사 김정희의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아직 그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출처]  별무신통 블로그 / 별무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