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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회상' 그리고 첫 번째 이야기...

용흥 2015. 12. 25. 00:10


김정호의 회상 그리고 첫 번째 이야기...









음유시인 김정호 첫 번째 이야기...




김정호(金正浩)  그의 본명은 조용호다, 1952년 3월27일 생(음)으로 광주시 북동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조재영씨로 부친은 서울 종로경찰서.여수경찰서장을 거쳐 이름을 광범 개명한 후 출판사를 경영했고 모친은 동일창극단 단원 출신으로 창의 명인인 박숙자씨 사이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몸이 약해 온갖 병치레를 다 했었다 한다.


김정호의 음악적 재능은 외가쪽의 영향이 지대했다.   모친과 함께 6ㆍ25동란중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외조부 박동신은 우리 국악의 거인이었는데 명창 김소희의 고수이자 인간문화재인 김동준, 국립창극단장 박우성 등이 그의 제자이다. 

 

어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함께 ‘아성극단’이란 악극단을 만들어 만주나 상해 등지로 공연을 다니기도 했던 ‘명인’이었는데 어머니는 김정호가 6살 때 집안에 있던 국악기를 모두 내다 버렸고 심지어는 가야금 줄까지 끊어버렸다 그 힘들고 고된 악극단생활을 자식에게 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머니는 ‘동일창극단’의 단원이었는데 명창 김소희 선생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외할아버지인 박동실 선생은 국악의 대가로서 인간 문화재인 김동준, 국립창극단장인 박우성 등을 길러냈고 특히 ‘김유신 보국가’ ‘유관순전’ ‘건국가’ 등을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광주 수창국민학교 2학년 때 서울 교동국민학교로 전학을 온 김정호는 70년대 인기개그맨이 었던 고영수 와는 같은 동네 같은 교동국민학교를 다녔고 용호의 어린 시절은 온순하면서도 활달했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 글짓기나 연극을 잘하는 국민학생 이었다.  특히 웅변에 재능을 보여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밥상위에 올라가 연설흉내를 내는 등 웅변에 재능을 보여 여러 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머리좋고 활달한 개구쟁이였고 국민학교 1학년 때는 뇌염에 걸려 사지를 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서울의 교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근의 대동중학교에 입학하였고 중학교때 '전국 학생 웅변대회'에 매년 참가하여 수상(정확히는 입상)도 했었다는데.. 대동상업고등학교까지 다녔던 김정호에게 우연히 음악에 심취하는 계기가 있었다.





김정호의 경우도 계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3 때인 어느 무더운 여 름,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이스크림가게가 문을 열었는데 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배달하는 아저씨가 배달이 없는 시간에는 늘 기타를 퉁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흘러간 노래 <애수의 소야곡>, <울며 헤진 부산항> 등의 처량한 기타소리는 어린 김정호의 발길을 멈추게 했으며, 학교수업이 끝나면 그는 항상 그곳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이 후일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집 근처 악기점에서 1,500원 짜리 기타를 3 개월 할부로 구입하여 아이스크림 배달원 아저씨한테 지도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혼자 기타를 통기다 음이 틀리면, 처음에는 기타 줄을 맞출 줄도 몰라 밤늦은 시간이라도 아이스크림 가게 문을 두드려 잠자는 아저씨를 깨 워 줄을 맞춰 오곤 했었다는데..


어릴때나 성인이 된 후나 한가지 일에 뜻을 두면 어느 정도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렸던 그 의 성격은 후일 그 아저씨를 오히려 가르쳐 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기회에 이어서 계속>

 

 

 

 







가사 (회상)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 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의 눈을 보았지 음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어 지금은 후회를 하고 있지만
멀어져가는 뒷모습 보면서 두려움도 느꼈지 음
나는 가슴 아팠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때
보고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한 두번 원망도 했었지만 좋은 사람이었어 음
하지만 꼭 그렇진 않아 너무 내 맘을 아프게 했지
서로 말없이 걷기도 했지만 좋은 기억이었어
너무 아쉬웠었어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때
보고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때로는 눈물도 흘렸지 이제는 혼자라고 느낄때
보고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 찢어진 사진 한장 남질 않았네
그녀는 울면서 갔지만 내 맘도 편하지 않았어
그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김성호의 회상 (1989年)

https://www.youtube.com/watch?v=HyLgtjX_J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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